수두 그리고 동물사육장

음, 그러니까 이야기는 24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지금도 그렇지만) 수두바이러스라는 것이 유행했고,
평범하고 범용한 인간이었던 나는
여지없이 수두바이러스에 걸려 며칠간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그 일이 떠오를때면 학교 뒤편에 있던 동물사육장이 떠오른다.
어째서 그런 것이 학교 뒤편에 있었는가 하는 문제는
학교행정담당자들이나 향토사학자
혹은 열정을 가진 교사가 해야할 일이긴 하지만,
당시에 학교를 다녔던 학생으로서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조심스럽게 추측해보면
"교육용"이 아니었나 싶다.
 
그곳에는 몇마리의 얼빠진 닭과 멍한 눈을 한 토끼가 있었다.
 다른 동물은 없었다.
물론 소나 곰, 돼지도 있었으면 좀더 근사했을 것이고 말까지 있었다면 동물농장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학교는 그렇게 까진 하지 않았다.

"닭하고 토끼 정도면 충분하잖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나는 종종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학교 뒤편의 동물사육장을 찾아가곤 했는데,
딱히 닭이나 토끼를 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곳은 내가 즐겨하던 산책코스의 한 포인트로 동물사육장을 거쳐 커다란 느티나무를 지나 학교 운동장으로 돌아가곤 했다.
사실 동물사육장은 냄새도 나고 어쩐지 '기분나쁜 느낌'을 주는 구석이 있어서 학생들이 잘 가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용했고 나는 그런 분위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수두가 걸려서 상당히 불쾌한 몰골을 하고 있던 그때도 나는 그곳을 거쳐 산책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 잠시 서서 닭과 토끼들을 향해 뭐라뭐라 얘기했던 것 같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였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내용은 쏙 사라지고 그 장면만 기억에 남아있다.

수두가 낫고(그때는 나았다고 생각했다) 24년이 흘러 나는 어느 은행의 대리가 되어있었다.
물론 은행에 들어간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수두를 앓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수두를 앓았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잊고 지나가는 많은 기억들 중의 하나였고, 아마 어쩌면 죽을때까지 잊어버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대상포진에 걸렸다.
처음엔 그게 대상포진이란 것도 몰랐다.

신기한 것은 대상포진이란 병은 과거에 앓았던 수두바이러스가 체내에 남아있다가
몸이 쇠약해졌을때(그러니까 수두바이러스 입장에서 말이다.)
"옳지, 꽤 쾌적한 환경이 되었는걸?"
하는 식으로 신체의 전면에 등장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점이다.

이미 24년전에 사라졌다고 믿은 녀석이 그렇게 오랜시간동안
그러니까 군대에서 유격훈련도 같이 받고,
여자친구와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도 함께 하고,
뭔가 혼자 나쁜짓을 계획하며 낄낄거릴때도 함께 했다는 사실이
왠지 기묘하게 느껴졌다.

즉, 나라는 한 인간의 인생에 있어 하나의 씨줄처럼그것은 나와 함께 해왔던 것이다.
내가 대상포진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잊고 살았을 그 존재가 말이다.

지금도 나의 옆구리에는 약간의 그 흔적이 남아있다.
이것이 완전히 없어질 지 어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남아있든 그렇지 않든지 간에
수두바이러스는 앞으로도 나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것은 내가 체험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과 함께 살았던
하지만 잊어버린 '어떤 것'들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켰다.
마치 동물사육장 처럼 말이다.

나는 이글을 쓰면서
그때 내가 바라보던 얼빠진 닭과 잠든 토끼들과 커다란 느티나무를 떠올린다.
바람이 불고 느티나무가지가 흔들린다.
7살의 나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내 몸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그것' 덕분에 7살의 나를 만난다.
그것은 꽤 멋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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